‘아직도 노동법을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심지어 노사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노동법이 아니라 투쟁과 운동의 영역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동안의 노동법이 주로 정규직 노동자들이나 힘 있는 노조의 도구로 전락하였기 때문에 그 유용성에 대한 의문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상처가 깊은 지금이야말로, 더더욱 노동법을 해야 한다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노동법의 가치가 필요한 때라고, 노동법은 죽은 법이 아니라 펄떡거리며 살아 숨 쉬고 끊임없이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고 답하는,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시민법 질서와 계약자치의 문법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단체협약이 계약을 무효로 만들 수 있다는 것, 장시간 근로는 당사자가 동의해도 위법할 수 있다는 것, 해고 통지는 서면에 의하지 않으면 효력이 없다는 것, 노동관계의 상대방은 노동자 개개인이 아니라 그들이 모인 조직체라는 것, 파업을 벌이는 일이란 마치 표현행위를 하는 것과 같이 보아야 한다는 것 등등 … 이 모든 것이 부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법이야말로,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고, 소유하는 자가 소유하지 않는 자를 지배하는 불합리한 자연 상태로부터 세상을 구원하는, 그래서 법률이 사람과 사회를 얼마나 역동적으로 형성해 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진정한 규범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우연히, 누군가는 충격적인 경험에서, 누군가는 무언가를 마음먹고 찾아 헤매다가 노동법을 만났습니다. 그리하여 몇몇은 곧바로, 다른 몇몇은 뒤늦게 그 매력적인 세계에 빠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노동법이 안겨준 첫 사랑의 설렘을 잊지 못하고 서성이다가 마침내 운명처럼 서로를 알아보았습니다.

그 만남이 그저 한 순간의 추억이나 어리석은 후일담이 되지 않도록, 이제 『노동법연구소 해밀』을 창립하려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두, 노동법이 예리하면서도 따뜻한 그 무언가가 될 수 있도록 자르고 쓸고 쪼고 갈아나갈 것입니다. 노동법으로 세상에게 말을 걸고,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도록 힘을 모을 것입니다. 그렇게 찾은 노동법의 참모습이, 공허한 담론과 추상적 이념의 언어가 아니라, 힘 있는 울림으로 노동의 문제가 있는 곳에 진정한 해답이 될 수 있도록 애쓸 것입니다. 이런 우리의 하나 된 참 뜻을 여기에 담아 깊은 마음으로 새겨 다짐하고자 합니다.

2012. 12. 20.
노동법연구소 해밀 창립회원 일동






노동법연구소 해밀은 노동법에 정통한 법률가의 육성과 노동법에 대한 시민교육을 통하여 노동인권의 지평을 넓히고 노동법 실무의 논의 수준을 발전시키며, 노동인권 분야의 문제 해결을 사회통합적 관점에서 연구하고 실행방안을 모색하여 사회적 갈등 조정에 기여함을 설립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해밀 : 비가 온 뒤에 맑게 개인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