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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 제3호 02. 지금 해밀에서는

 

03 해밀 아카데미 수료기 / 내 인생의 아카데미 해밀

 

이선옥 (기록노동자, 르포 작)

 

 

 

내가 들어봐서 아는데~

- 내 인생의 아카데미 해밀

 

나는 이른 바 운동권이고 운동권은 세상 모든 일에 참견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바쁘다. 불러주는 데 없어도 가야할 곳(대부분 상대가 안 오길 바라는)은 많고, 세상이 팍팍할수록 참견할 일도 많아진다. 사실 나는 운동권 축에도 못 끼는 날라리다. 노는 거 좋아하고, 지금 내가 즐거운가가 모든 일의 판단 기준인 이기적인 사람이다. 노동계에 가면 화류계라 그러고, 화류계에 가면 노동계라 하는 박쥐같은 삶을 산다. 그러면서도 ‘운동권’을 자칭한 까닭은 내가 쓰는 글과 다니는 현장들이 정체성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노동문제에 대한 글을 주로 쓰다 보니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나는 ‘운동권’이다. 어차피 그렇게 보인다면 운동권에 대한 나쁜 편견이 조금이라도 바뀌도록 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기여라고 생각한다. 나를 믿고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노동자들, 편견과 비난을 감수하면서 묵묵히 세상을 바꾸는 데 자기 삶을 바치는 사람들에 대한 도리라 여긴다.

 

해밀아카데미에 등록한 것도 그 때문이다. “내용은 없고 주장만 있는 사람들”이라는 운동권에 대한 편견.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니 부끄러웠다. 노동문제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을 비난하는 글을 많이 썼지만 실제 어떤 법리가 어떻게 작동해서 이런 판결이 나왔는지 나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다 가끔 “어떤 근거로 이런 판결이 난 거죠?”송곳 같은 질문을 받게 되면 땀을 삐질 흘렸다. 법. 그게 뭘까.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부는 엉덩이의 힘이라는 말을 믿고 우선 개근을 목표로 했다. 운동권이 두 달 넘는 10차례 강의에 개근한다는 건 기적과 같은 일이다. 나는 기적을 이뤘고 개근상을 받았다! 심지어 강의에서도 딱 두 차례만 졸았다.(강문대, 권두섭 선생님 죄송합니다;;) 모르는 분야라 질문을 열심히 했더니 비전공자의 분투가 기특했는지 수료자 대표로 수료증을 주셨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이 글을 쓰는 영광도 누리고 있다.

 

현존하는 온갖 아카데미 가운데 해밀아카데미는 최고라고 생각한다. 강의주제와 강사진 모두 그렇다. 강의마다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해고, 임금, 산재, 국제노동, 노조, 단체교섭, 쟁의행위, 간접고용... 모두 짧은 시간에 담아내기 어려운 주제들이다. 강사들은 성실하게 준비한 자료로 시간의 제약을 극복했다. 공부를 하고 나면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아 보람찼고, 내가 하는 일에도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법은 인간에게 이롭게 작용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 분들을 만난 것이 큰 수확이다. 노동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들어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권유를 자신 있게 하는 까닭이다. 두 달 넘는 시간동안 해밀아카데미를 다니고, 포럼과 판례읽기 모임에 참여하면서 노동법에 대한 지식이 한 뼘쯤 자랐다. 해밀에서 들은 풍월로 몇 마디 했다가 법조인이냐는 소리까지 들었다.(ㅎㅎ) 물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먼 여정의 시작을 하게 해 준 해밀아카데미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 더 열심히 공부해서 ‘내용 있는 주장을 펴는’ 노동르포 작가가 되려고 한다.

 

2014년 12월 12일. 35년 동안 간첩 누명을 쓴 일가족 8명에 대한 재심사건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낭독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 숙여 사과했다. “인권보장의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할 사법부의 잘못으로 형언하기 어려운 일을 당한 점에 대해 사법부의 구성원인 우리 재판부가 사과를 드립니다.” 기사로 이 대목을 읽는데 눈물이 났다. 법 때문에 고통 받는 우리 이야기를 써달라던 해고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수십 년 세월이 흐른 뒤 “노동권 보장의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할 사법부의 잘못으로 형언하기 어려운 일을 당한 여러분에게 사과드린다”고 말할 재판부도 존재할 수 있을까. 몇몇 판결은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한다. 잊지 않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 나도 그 중 한 사람 몫을 감당한다면... 작은 희망을 품게 해 준 해밀의 모든 인연에 감사드린다.

 

 

* 이번 아카데미 수료기를 써 주신 이선옥 작가님께서는 제5회 해밀 아카데미를 개근해 주셨고,

   총 10개의 강좌를 한 번도 빠짐없이 출석해 주신 15명의 아카데미 회원님을 대표하여 개근상을 수상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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