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권석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시험공부를 하는 동안 하지 못했던 진짜 공부를 하고 싶어서 해밀 아카데미도 신청하고 이런 저런 강연도 다니고 있는 중에 '노동기본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한 ILO 핵심협약 비준 방안' 심포지엄이 모시기 힘든 연사들을 모시고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여러 곳에서 아주 좋은 강연이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꼭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전까지 제가 알고 있는 ILO 핵심협약에 관한 것은 우리나라가 아직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았고, 그 이유가 협약에 비준하면 공익근무요원 등이 문제되기 때문이라는 아주 피상적인 사실에 불과했습니다. 심포지엄에 참석함으로써 ILO가 어떤 곳인지 ILO 핵심협약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고 또 실질적으로 핵심협약들을 비준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논의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분들의 연설과 발제, 토론을 듣고 나서 제게 든 생각은 ILO협약의 구체적인 내용은 헌법과 같이 추상적이고 일반적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노동3권 등 기본권과 비교해 봤을 때 그것이 특별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ILO 핵심협약은 국제사회가 노동에 있어서 최소한 지켜져야 할 원칙들을 선언한 것에 불과하다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이어서 이러한 핵심협약을 비준하는데 있어서 선비준 후입법이냐 선입법 후비준이냐를 가지고 논란이 있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비준 전략에 있어서는 어떤 의미를 지닐지 모르겠지만 핵심협약을 비준하는 것이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가 가야할 길이라고 한다면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를 논쟁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코린 바르가 ILO 국제노동기준국장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비준은 동일한 기준으로 판단받을 것을 수용함으로써 국제사회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약속하고 서약하는 것입니다. 김지형 소장님께서 기조강연에서 인용하신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처럼 우리가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가야할 길이 거기 있다면 더 준비되기 위해 기다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를 가짐으로써 정의를 이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의지는 ILO 핵심협약의 조속한 비준일 것입니다. 

후기를 쓰고 있는 도중에 정부가 결사의 자유 제87, 98, 강제노동 금지 제29호는 비준 절차에 착수했습니다. 그런데 강제노동 금지 제105호는 제외했습니다. 105호는 정치적 견해 표명 및 파업 참가에 대한 처벌 등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의 경우 우리나라 전체 형벌체계를 개편하는 문제와 맞물려 지금은 추진하기 어렵다는 것이 우리 정부 입장이었습니다 

세 가지 협약에 대해 비준절차에 착수한 것은 환영할 만 하지만 아쉽게도 나머지 한 가지 협약에 대해서 비준절차를 유보한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어서 빨리 정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